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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FE] Lighthouse 2025. 6. 3. 12:38

요즘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고 있다.

 

나는 누굴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나의 삶을 돌아보며

어린 시절의 나는 굉장히 겁이 많았고 마음이 여린 남자 아이였다.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교육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공부했고, 그 덕에 지금도 영어에 자신이 있다. 재수 시절 수능 영어를 만점 받았던 기억도 있다. 물론 A/B 나눠진 수능 시험이었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약자를 도와야 한다고 항상 어머니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지하철에서 노약자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고, 길가다가 구걸하는 분들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어머니 덕분인지 항상 마음 한켠에 누군가를 도와야하며 피해를 주면 안된다라는 의식이 지금도 자리잡고 있는것 같다.

 

중학교때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사실 처음엔 연예인 매니저가 되고 싶었다가, 가수가 되고 싶었다가 배우가 되고 싶어졌다.

엄청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였는데 갑자기 어떤 바람이 불었던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릴때부터 교육은 열심히 받았지만 사춘기 시절 엇나가며 공부를 잘 하지 않았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에 담임 선생님을 만나 180도 바뀌게 되었다.

공부에 흥미를 느꼈고 성취감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사실 성적 오르면 연기학원 보내준다는 어머니의 약속도 한 몫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여전히 배우가 되는 것이 나의 꿈 이었다.

마침 3학년 선배가 연극부 동아리를 만들어서 동아리원 모집 공고를 내고 있었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1기 멤버로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고 배우의 꿈을 키우며 청소년 연극제에도 나가고 학교 축제에서도 연극을 올렸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연극부 동아리의 부장으로써 서울 대성고등학교 연극부 동아리 키작은 소나무를 이끌게 됐다.

사실 그때 당시 나의 모교가 자사고로 전환이 되어서 동아리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앞으로도 어렵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후배들이 함께 해줬고 동아리원들과 청소년 연극제에도 참가하고 봉랑제에서 공연도 올리고 단편 영화도 찍으면서 많은 활동을 했다.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했던 순간

 

놀토가 아닌 토요일에 동아리원들과 함께 연습을 하는게 정말 즐거웠고 학교 생활을 하며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 아니였나 회고한다.

열심히 동아리 생활을 했던 것이 학교에서도 좋게 보였는지 졸업식에서 갑자기 호명이 되었고 강단 앞에 나가서 공로상을 받았다. 이때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상을 받아 얼떨떨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연극영화과 진학을 위해 노력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재수, 삼수를 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했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

마지막 도전을 하고 실패하면 "군대에 가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지막 도전을 시작했다. 200명이 넘는 동료가 있는 3s 연기학원에 다녔다.

이때 정말 열심히 했다. "배수진이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에만 몰두했다.

학원 동료들과 어울림도 없었다. 정말 연기/노래/무용에만 시간을 보냈고 내가 원하는 학교인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겠다는 한 가지 목표만을 보면서 달렸다.

노래를 잘하고 싶었다. 한 여름 3s 연기학원 별관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연습실이 있었는데 연습실에 틀어박혀 노래를 만 번 불렀다. 에어컨도 안나오는 방이었다.

그 결과 입시 전 마지막 모의고사인 top 10 오디션에서 top 10이 되었고 어머니와 다른 학원생, 여러 학부모님들이 참관하는 무대에서 공개 모의고사(오디션)을 봤다.

어머니가 앞에 있었고 그간 죄송한 마음과 뒷바라지 해주셨던 모습이 떠올라 면접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시험일 당일날, 아침에 학원에 마지막 티칭을 받으러 갔다. 원래 나의 계획은 노래를 부르는 것 이었다.

당일날 아침 담당 선생님이 나의 연기와 노래를 보더니 연기로 바꾸자고 말씀하셨다. 많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노래로 탑 10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연기라고? 나 자신과 선생님을 믿지 못했다.

시험장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고민을 했다. MR을 제출하지 않았지만 무반주로 노래를 할까? 독백 연기를 하는게 맞을까? 

결국 시험장에 들어가서 연기를 했고 집중하지 못했던 나는 연기를 하던 중 교수님과 눈을 마주치게 됐고 집중력이 완전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내가 진학하고 싶었던 학교는 물거품이 됐고 나의 4수도 실패로 돌아갔다.

 

사실 원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직까지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실 한이 된 것 같기도.

그때 내가 노래를 했었더라면? 노래를 해서 떨어졌더라면? 이런 생각이다.

아쉬운 감정이 컸다. 하지만 선생님도 들으셨던 정보가 있으셨을 것이고 아끼는 제자였던 나를 떨어트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꼭 동국대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하셨고 정말 열심히 가르침을 주셨었기 때문이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참 아쉬웠던 연기 생활이었다.

물론 입시만 한 것은 아니였다. 중간 중간 단편영화도 여러편 참여하며 현장의 경험도 느껴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오그라든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남을 이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내가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든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200명 학원생 중 나의 담임 선생님이 있었던 반들의 리더를 했었다. 30-40명 되는 친구들을 항상 이끌고 입시를 성공적으로 가기 위해서 형으로써 오빠로써 노력했다.

그 결과 우리 선생님 반의 입시 결과률이 제일 좋았었다. 물론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친구들이 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잘 단합하고 뭉칠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잘 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군대를 가고 배우라는 꿈을 포기하게 된다.

 

군생활을 하며 나는 전역하고 무엇을 해야할까 라는 고민을 많이했다. 22살에 처음으로 다녀왔던 유럽에 꽂혀있던 시절, 나는 여행에 미쳐있던 시절에 군생활을 했다.

군생활을 하며 유럽 여행에 대해 상상하고 파리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맨땅에 헤딩으로 Delf A1 자격증을 땄다. 불어 자격증이다.

고마웠던 전우들

 

그래도 대학에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전역하자마자 수능 공부를 준비했다. 학원을 다니며 다시 고등과정을 공부했고 3개월 만에 사탐 세계사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너무 어려울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학원을 그만두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PPT 자료를 만들고 부모님께 저녁 시간에 내 꿈과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흔쾌히 그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대학 진학의 꿈을 접게 됐다.

 

학원을 그만두자마자 친한 친구와 유럽 여행을 다녀온다. 프랑스에 가서 내가 공부했던 프랑스어로 소통을 해보며 정말 즐거운 여행을 했다. 그렇게 다녀와서 여행업에 종사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투어에서 일을 한다.

친구와 함께했던 유럽여행

여행사에서 일을 해보며 관광업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갔고 관광업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관광학과 전공을 시작하게 됐다. 2학년까지 공부를 하고 가이드가 되고 싶어서 관광통역안내사(영어) 자격증을 취득했다.

 

유럽에 가서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여행사에 가이드로 최종 합격을 하고 교육을 받았다. 스페인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나왔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중국에서 코로나가 발병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을것 같았다. 메르스, 사스도 전염병이었지만 모든 것이 스탑되지는 않았다.

2020년 4월 출국이었던 나는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모든것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전역 이후 2020년 4월까지 약 4년을 여행업에 종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계속 코로나가 끝나가길 기다리던 중 이렇게 기다려서만은 안되겠다 라는 생각을 가졌다. 2020년 6월 젠틀몬스터 제품 검수팀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일을 하면서 계속 고민했던 것 같다. 끝이 나지 않는 코로나 펜데믹과 암울한 관광 산업에 대해서..

하지만 언젠간 코로나 펜데믹도 끝날 것 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여행업을 창업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왔을때 내가 만든 플랫폼을 통해 누구보다 쉽게 한국 여행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관광이라고 생각했다.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고민하던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플랫폼을 어떻게 만들건데?

IT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노코드툴로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찾아봤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아 모르겠다.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

그렇게 앱개발을 독학으로 시작했다. Java도 모른채 Do it! Android Studio 책을 공부했다.

당연히 할수가 없다. 하지만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3개월 만에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3번을 돌려봤다.

이런 방식으로는 될수가 없겠다 생각하여 Java에 대해서 공부하게 됐다. Java 책도 3개월동안 3번 돌려본 것 같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코딩으로 컴퓨터에서 내가 생각하던 것이 현실화 되는 것을 보면서 마치 어린 시절 혼자 10시간도 넘게 놀 수 있었던 레고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데? 라는 생각으로 국비지원 학원에 등록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나름 에이스 원생이였다.

내가 공부했던 과정은 사실 Spring, Java, SQL 백앤드 과정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웹 프론트엔드를 만드는 과정이 재밌었고 학원 과정 졸업 후 팀원들이 만류를 했지만 나 혼자 프론트엔드로 전향했다.

사실 React를 3개월 공부하고 과제를 했고, 과제에 통과를 하여 직무 인터뷰, 컬쳐 인터뷰를 보아 첫 커리어를 시작한 오픈소스컨설팅 이라는 회사에 합류하게 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 날먹했네? 라고 생각도 들지만, 정말로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국비 지원 학원을 회고했던 글
 

비전공자 개발자 국비지원코스 후기

2020년 12월 우연히 코딩을 접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동료와 대화를 나누던 중 관광객을 위한 웹 혹은 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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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를 시작한 후

오픈소스컨설팅을 다니며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알게 됐다. 비록 안타깝게 팀이 해체되어 흩어지게 됐지만, 지금도 함께 만나고 어울리는 소중한 동료들이다.

개발자로써 많은 성장을 했고 어떻게 일을 해야하는지 배웠던 소중한 회사였다.

그 이후 챌린저스 게임즈라는 회사에 입사를 했지만 입사 두 달 만에 회사 경영난으로 퇴사하게 됐고 지금 재직중인 회사로 입사하게 됐다. 지금 회사에서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사실 요즘도 팀 사정이 썩 좋지는 않다.

 

이 과정 속에서 지금 나의 전부인 와이프를 만나게 됐고 결혼까지 오게 됐다.

결혼하고 요즘이 더 좋은것 같다.

매일 함께하고 있고, 이젠 나를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생겼으니 말이다.

더 열심히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Now, We

사실 회고 글에서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적은 것 같아서 와이프가 이 글을 봤을때 한 소리 할 것 같아서 두렵긴 하다. 그래도 봐줘~~

 

난 뭐지?

그래 지금까지 내 삶을 회고했지, 그럼 난 누군데?

나는 도전하는걸 좋아하는 사람, 챌린지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어떻게든 챌린지를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 사람들을 이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 지극히 실용적이며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랬다.

 

요즘의 나를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니가 언제부터 개발자였지? 언제부터 개발자로 안정적으로 일하려고 했던 사람이지? 너의 도전 의식은 다 어디갔지?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도전의식이 점점 의식 너머로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도전하고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 내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씩 다시 치워가려고 한다.

의식 너머 먼지가 쌓여있는 내 도전 의식을 다시 꺼내보려고 한다.

그게 나다운 것이니깐.

그래야 진정으로 내 자아를 실현할 수 있으니깐.

언제부터 왜인지 공허했던 마음을 다시 온기로 채워넣을 수 있으니깐.

 

나를 회고하고 싶었다.

요즘 들고 있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내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오늘 이 글이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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